양산서 파룬궁으로 심신건강 되찾은 라진홍 박사

바쁘고 각박한 요즈음의 삶 속에 항상 여유롭고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어떨까. 부경대학교 실습선 기관장으로 근무하다 지난해에 정년퇴임을 한 라진홍 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통해 새 인생을 개척했다는 그의 삶이 궁금해 라 박사가 평생 나고 자란 양산 시골집을 찾았다.
아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
집에 들어서니 소박한 안채에 널따란 마당이 시원하게 펼쳐졌고 커다란 유자나무에는 노란 유자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 집에서 태어났어요. 이웃들이 모두 도시로 떠났지만 저는 직장이 부산인데도 여기서 출퇴근했습니다. 아이 둘을 모두 이곳에서 낳아 키웠지요. 시골집은 생활하기가 힘든데도 제 뜻을 받아주고, 완고하신 시골 부모님을 평생 모신 아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태어난 곳에서 60여 세가 될 때까지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며 살아온 그의 진득한 삶이 돋보였다. 양산문인협회 수필가인 아내 정영숙(59)씨는 마당 있는 집이 좋기는 하지만, 거주하기는 불편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한 생활이 자연스럽게 수필의 소재가 됐는데 이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글 쓸 일이 뜸해졌다고 아쉬워했다.
정영숙 씨에게 남편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 남편이 될지 물어봤다. “그이는 항상 변함이 없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편이에요.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겠어요. 저나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존중해주는 편이에요. 그런 아빠를 아이들은 무척 존경하는 것 같아요. 하루는 며느리 될 사람이 집에 왔는데 아들이 아빠 칭찬을 많이 했는지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고 하더군요.”

다재다능한 라 박사는 목공에도 재주가 있어 웬만한 가구는 손으로 만들어 쓴다. 직접 만든 가구는 침대에서부터 서랍장까지 다양해 목공 실력이 일반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도 듣는다고.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상에 필요하면 직접 만들어 쓰는 그의 손썰미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라 박사는 어릴 적부터 항상 새벽 4시면 일어나 하루를 연다. 아침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 그는 이공계통뿐 아니라 인문 사회책도 많이 봤다. 그는 사람들이 길게 살아봐야 100년인데 죽고 난 후의 세계가 궁금했고,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이 가진 자아의식도 궁금해 관련 도서를 많아 봤다고 한다. 수련 후에는 새벽에 파룬궁 연공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다
“1996년 무렵 제가 석, 박사 공부를 할 때였습니다. 집안 가계를 집사람한테 맡기고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갔지요. 학원을 경영하던 아내가 금전적으로 문제가 생겼는데 공부하는 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혼자 해결하려다 오히려 크게 빚을 지게 됐어요. 그 당시 수억 원 정도 됐는데 가지고 있던 부동산과 토지를 모두 처분해야 했어요. 부모님께 설명하기도 어려웠고 갑자기 빈손이 되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로부터 7년쯤 뒤에 파룬궁 수련을 만났어요.”
2003년에 라 박사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동료로부터 파룬궁 수련지침서인 <전법륜(轉法輪)> 책을 한 권 얻었다. 책 내용 중에서 ‘명예와 돈은 죽어서 가져갈 수 없고 오로지 덕(德)은 가져갈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재산을 크게 잃고 상심하던 라 박사는 이때가 생각을 바꾸게 된 터닝포인트 였다고 한다.
“재산을 잃은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마음을 내려놓으니 무척 편안해졌어요. 전법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무신론자가 신을 믿다
“저는 무신론자였어요. 대학 4학년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저는 부산 수산대학교 시위주동자였습니다. 데모하다가 망미동에 있는 보안대에 잡혀가 감방 생활을 한 달 보름 이상 했는데 그때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어요. 감방에서 나오는데 불교 독송집과 신약 구약 성경책을 주더라고요. 마음먹고 읽어봤어요. 그 책들은 공감은 가는데 제가 무신론적인 사고를 하다 보니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크게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 후 어느 날 라 박사는 전법륜을 접하게 되고 책에서 ‘초상적인 과학’이라는 말이 눈에 확 들어왔다. 특히 우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이 명확하게 이해됐다. 전법륜 책은 수련 경지가 높은 사람이 자신의 체험을 일목요연하게 적어놓은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 ‘정법(正法)수련’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점차 수련에 몰입하게 됐다. 라 박사는 이 세상은 인간의 힘만이 아니라 고층생명의 이끌림 하에 움직인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점차 무신론에서 벗어나게 됐다.
수련하고 사람이 달라졌네!
“배를 타고 실습을 나가면 육상과 격리돼 실습 외 개인적인 사회활동은 거의 할 수가 없어요. 한 해의 실습일수가 100일이 넘으니 일 년 중 1/3을 배 안에서 보냅니다. 저는 수련 전에 성격이 무척 직선적이었어요. 제한적인 공간일수록 직원, 학생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잘못하면 나무라기 일쑤였고, 늘 남의 단점을 지적했어요. 수련 이후에는 ‘선타후아(先他後我)’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나보다 상대방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단점보다는 주로 장점을 얘기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주변에서 ‘와, 사람이 바뀌었어. 참 희한하네!’ 하더군요. 요즘도 지인들이 저를 보고 가끔 도사라고 불러요.”
라 박사는 2011년 한국해양대학교 운항훈련지원부장으로 부임해갔다. 부경대와 해양대학은 실습하는 방법과 근무 분위기가 달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만 수련을 소홀히 하게 됐다. 하지만 늘 선타후아 하려는 마음이 있었고 자신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손해를 본 적도 있지만 학교와 학생을 위한 일이라 아깝지 않았다.

학교를 퇴직할 무렵 더는 배를 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다시금 수련을 시작했다. 올해는 마침 양산에 사는 장영아(55)씨와 서미현(53)씨를 만나 함께 수련을 하게 됐다. 매일 새벽 5시 50분부터 남양산역 앞 음악분수 공원에서 연공을 한다. 매주 수, 금요일 오전에는 전법륜을 읽으며 마음 닦은 경험에 대해 서로 교류하고 있다. 장영아 씨는 찻집을 경영하는 데 고민을 안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그럴 때면 수련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있다.
벌의 생태를 통해 삶의 단면을 보다
라 박사는 2016년부터 3통의 벌을 사들여 마당에 두고 키웠다. 다음 해 정년퇴임을 하게 되자 벌통 수를 좀 더 늘렸다.
“양봉은 인류문명 역사와 비슷한 5000여 년 전부터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긴 역사 기간 동안 인간에게 달콤한 꿀과 어둠을 밝히는 밀랍을 제공하면서 인간과 공생해 살아왔지요.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도시인들은 꿀벌들조차 보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다행히 최근 들어 도시에도 숲과 꽃이 어우러지는 공원이 만들어지고 전원 도시 가꾸기 운동이 일어나면서 도심에도 벌이 날아다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요. 그래서 나처럼 도시 양봉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그는 꿀벌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라면 인간이 살기에도 쾌적한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라 박사는 벌의 생태를 통해 인간 삶의 단면을 본다고 한다.
“벌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군체 생활을 하는데 각 개체의 역할이 완벽한 조화로움을 형성하고 있어요.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각자 맡은 부분을 착실히 해낼 때 사회 전체가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일이 그럴 것 같습니다. 또 벌들의 세계는 얼마나 냉정한지 몰라요. 여왕벌이 번식을 못 할 때는 여지없이 여왕벌을 교체합니다. 일벌에 의해 정확하게 평가를 받게 되지요.”
라 박사는 상대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집착심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삶이 갈수록 좋고 편안해진단다. 그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잃었던 건강을 수련으로 회복했다며 양산의 많은 분이 건강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파룬궁 수련을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했다.
이상숙 기자 EPOCH TIMES 기사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