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던 올림픽 메달리스트, 나누는 삶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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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D]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라트비아는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올림픽에 참가해 독립 후 첫 메달을 땁니다. 주인공은 바로 루지 종목 남자 단식에서 동메달을 딴 마틴 루베니스. 그는 독립한 조국에 동계올림픽 첫 메달을 안겨주며 라트비아의 영웅이 됐죠. 올림픽 메달은 그의 인생을 바꿀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것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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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의 스포츠 영웅

1978년생으로 올해 마흔인 루베니스는 9살 때부터 루지를 배웠습니다. 1998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1위를 포함해 90년대 많은 국제 대회를 휩쓸었고 2004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땄습니다.

그는 은퇴 전까지 다섯 번의 동계 올림픽에 참가했고 세 번째 참가한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죠. 그해 루베니스는 올해의 라트비아 스포츠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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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루지 단체전 동메달을 추가합니다. 라트비아에서는 그와 동료 선수들의 기념 우표가 발행되기도 했죠. 소치 올림픽이 끝난 후 그는 은퇴를 발표했고 현재는 라트비아 올림픽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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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으로 깨달은 또 다른 삶

대부분 선수가 그렇듯 집중적으로 운동을 하며 살았던 지난 시간은 그의 몸에 많은 부담을 주었습니다.

그는 “20대 때 몸은 늘 40대 같았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근육도 뻐근했죠. 사실 운동에도 최선을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몸을 관리하느라 그는 자연스럽게 건강법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중국의 수련법을 찾아보던 2005년 그는 중국의 심신수련법 파룬궁(파룬따파라고도 함)을 알게 됐죠. 어릴 때부터 중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이소룡의 영화를 보며 자랐기에 그는 중국 문화가 꽤 익숙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파룬궁이 ‘진정으로 찾던 것’이라며 바로 수련을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파룬궁 수련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공을 처음 했을 때, 온몸을 지나 등으로 관통하는 많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에너지는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또 계속 변했죠. 열심히 훈련했을 때처럼 땀이 났어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좋은 일이, 엄청난 변화가 내 몸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어요. 수련을 하고 1달 반 정도 지났을 땐 허리와 다른 부위에 있던 통증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 일어난 변화였죠. 저는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바뀌면 몸도 바뀝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 매우 이기적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를 지도하던 코치도 ‘성공하려면 상어처럼 날카로워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하네요. 그는 경쟁자를 이기려고 자신만의 썰매를 제작하고 혹시 누가 볼까 디자인을 숨기기도 했죠.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처음으로 깨달은 건 덜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의미로 무엇인가를 가지려면 무엇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수련할수록 더 많이 나누어야겠구나 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실제로 그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부터는 자신의 썰매 디자인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오히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이것에 저에게 일어난 일이고 제가 느낀 것들입니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하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살면서 부딪히는 좋지 않은 일은 모두 문제라고 여겼는데 지금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향상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찾아보죠. 또 비록 좋지 않은 일이라도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은퇴 후 라트비아 국가 대표팀 코치를 맡은 그는 새로운 루지 썰매를 만드는 엔지니어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선수로 오랜 시간 활동했던 그에게 코치직은 또 다른 도전이었죠. 그는 한때 코치 역할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서 다시 선수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힘든 시기, 그는 진선인(眞善忍)이라는 파룬궁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제 역할이 무엇이든 저는 제가 더 겸손하고 덜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말이죠. 저는 무대 뒤에 있지만 제 책임은 운동선수 시절보다 더 무겁습니다.”

그는 인권운동가로도 활동하며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룬궁 박해 중지를 촉구하는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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